조선시대부터 이어진 구수한 서민 간식 이야기 입니다. 오늘은 서울 서민 음식 '빈대떡'의 원래 모습에 대해 안내해드릴 예정입니다.

조선시대 빈대떡의 탄생: 서민을 위한 구황 음식
‘빈대떡’ 하면 오늘날 우리는 파전처럼 기름에 지져낸 노릇노릇한 녹두전 한 장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원래 조선시대에 먹던 빈대떡은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빈대떡의 어원은 ‘빈(貧)한 사람들이 먹는 떡’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녹두를 갈아 반죽해 부쳐내는 간단한 조리법 덕분에, 쌀이나 밀가루가 귀하던 시절에도 서민들이 비교적 쉽게 구해 먹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흉년이 들거나 곡식이 부족할 때는 귀한 곡식 대신 녹두로 만든 빈대떡이 구황 음식 역할을 하며 백성들의 허기를 달래주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한양의 시전(市廛)과 저잣거리에서 빈대떡을 파는 노점이 흔하게 보였다고 전해집니다. 기름에 지져내는 방식이 아니라, 숯불에 달군 번철에 반죽을 얇게 펼쳐 구워내는 형태였고, 이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전보다 기름기는 덜했으나 녹두 특유의 고소한 향이 살아 있었습니다.
빈대떡은 단순히 서민들의 한 끼가 아니라, 당시 도시 빈민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음식이었습니다. 쌀밥은 구경하기 어려웠지만, 길거리에서 구워주는 빈대떡 한 장으로 하루를 버티던 사람들이 있었고, 이는 오늘날 길거리 간식 문화의 원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전통 빈대떡의 조리법과 변화: 녹두 반죽에서 전까지
빈대떡의 핵심은 바로 녹두입니다. 먼저 껍질을 벗긴 녹두를 하룻밤 불려 곱게 갈아야 했습니다. 여기에 소금을 약간 넣어 간을 하고, 집집마다 손에 닿는 재료를 넣어 반죽을 했습니다. 가난한 집에서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맹빈대떡’을 먹었고, 조금 여유가 있는 집은 김치나 채소를 섞어 풍미를 살렸습니다. 더 부유한 가정에서는 돼지고기, 소고기, 또는 숙주나물까지 곁들여 영양을 보충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기름에 지져낸 바삭한 전의 모습은 사실 20세기 이후 정착된 조리 방식입니다. 조선시대의 빈대떡은 기름이 귀했던 탓에 번철에 살짝 구워내는 형태였고, 지금처럼 두툼하지 않고 얇고 투박한 모양새였습니다. 이 때문에 ‘떡’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지요.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빈대떡은 조리 과정에서 기름보다 불맛과 재료의 본연의 맛을 살린 음식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처럼 바삭하거나 고소한 풍미는 덜했지만, 녹두의 고소함과 소박한 재료의 맛이 살아 있었습니다.
근대에 들어와 기름이 보편화되면서, 빈대떡은 점점 ‘부침’의 성격을 띠게 됩니다. 시장이나 잔치에서 기름에 지져내는 형태가 보편화되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녹두전’의 모습으로 굳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원형은 어디까지나 녹두를 갈아 만든 서민 떡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빈대떡의 현대적 의미: 향토 간식에서 문화유산으로
오늘날 빈대떡은 단순히 ‘전’의 한 종류를 넘어,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 음식이자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광장시장, 남대문시장 등 서울의 전통시장에서 여전히 녹두 빈대떡을 맛볼 수 있으며, 이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있는 길거리 음식 중 하나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빈대떡이 단순히 맛있는 음식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서울 서민 문화의 상징이자, 서민들이 살아온 방식을 보여주는 역사적 흔적이라는 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빈대떡을 먹으며 느끼는 고소한 풍미 속에는, 과거 서민들이 흉년과 가난을 견뎌내며 살아온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는 빈대떡이 건강식으로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녹두는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소화가 잘 되어 부담이 적습니다. 특히 채식주의자나 웰빙을 중시하는 현대인들에게 빈대떡은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입니다.
빈대떡 복원의 가치는 단순히 옛 음식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잊혀가는 서민들의 삶과 이야기를 되살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의 빈대떡은 오늘날의 녹두전과는 달랐지만, 그 속에 담긴 서민의 삶, 공동체적 나눔, 그리고 도시의 역사까지 함께 되살려낼 수 있는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